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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프’ 가브리엘 샤넬, 패션 선구자→나치 스파이로 전범 논란까지

2020-11-22 11:36:13

[뉴스엔 서지현 기자]

희대의 디자이너 가브리엘 샤넬의
기구한 삶이 조명됐다.

11월 22일 방송된 MBC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는 패션계의 전설 가브리엘 샤넬의 삶을 다뤘다.

앞서 고아원에서 태어난 가브리엘은 성장 후 봉제 공장에 취직했다. 이후 봉제 공장만으로는 자신의 야망을 펼칠 수 없었던 가브리엘은 술집에서 노래하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파리로 가는 비용을 마련했다.

이어 파리에 입성한 가브리엘은 상속자 에티엔을 통해 경험한 상류층 문화를 바탕으로 모자 가게를 개업해 단숨에 대박 행렬에 올랐다. 특히 가브리엘은 투박하지만 가볍고 실용성 있는 모자를 만들어 여성들을 매료시켰다.

이후 가브리엘은 부유한 사업가인 아서 카펠을 만나 재정적인 도움을 받으며 패션 부띠끄를 열며 패션 혁명을 일으켰다. 당시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 전쟁터로 떠난 남성 대신 여성이 일을 하던 시기였다. 이에 가브리엘은 코르셋에 긴치마는 불편하다는 생각을 갖고 최초로 여성용 바지를 제작했다. 또한 코르셋을 없앤 원피스를 제작하거나 클러치 모양 가방에 체인을 다는 등 그야말로 '핫한 디자이너'로 등극했다. 그러나 1919년 연인 아서 카펠이 교통사고로 사망하자 가브리엘은 더욱 일에만 몰두해 브랜드를 키웠다.


이 가운데 가브리엘이 나치 스파이가 됐다는 이야기가 전해졌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파리는 독일에 점령당했고 당시 가브리엘은 나치 장교 한스 퀸터와 만나 스파이로 포섭됐다는 의혹을 받게 된 것. 해당 내용은 2016년 관련 문서가 공개되며 가브리엘이 암호명은 물론, 요원 번호까지 있었다는 증거가 밝혀져 그가 나치 스파이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당시 가브리엘은 종전 후 전범으로 몰려 스위스로 망명을 신청하게 됐다. 10년 뒤 가브리엘은 파리로 돌아왔으나 1971년 사망했다. 심지어 프랑스 정부는 전범 논란이 있던 가브리엘의 매장을 반대했고 그는 고향이 아닌 스위스에서 영면에 들게 됐다. (사진=MBC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뉴스엔 서지현 sjay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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